역대 재경종친회장과 유지(有志) 종현(宗賢)들의 활동(活動)
양도공재경종친회는 1972년에 발족(發足)되었다. 1950년대에 일찍부터 상경(上京)·거주(居住)하며 고양재 유사(有 司)로서 산소, 재실 관련 모든 일을 위임받아 처리하던 인섭() 종현이 서울 및 수도권 거주 양도공 후손들의 대동 단합과 위선사업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종친회의 결성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양도공재경종친회의 결성을 주창(主唱)하였던 바, 종원들의 전폭 지지에 의해 드디어 이 모임이 정식 단체로 출범하였던 것이다.
 
인섭(, 1906~1987, 사부공파)
초대 양도공재경종친회장은 1971년 재경종친회를 창립하여 1984년까지 14년간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특유의 위선심 (爲先心)과 지도력(指導力)으로 종사의 기반을 튼튼히 다진 분이다. 이분의 재임(在任) 당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공적비 (功績碑)가 양도공 산소 아래 세워져 있다. 함께 종사를 추진한 유신(有信)·해진(海鎭)·동건(東健) 종현의 방명(芳名)도 함께 등재(登載)된 공적비(功績碑)이다. 인섭 종현은 완풍대군파종회의 창립을 주도(主導)한 분이기도 하다.
 
유신(有信, 1924~1992, 주부공파)
2대 회장은 1984년에 부임하여 1992년 작고(作故)할 때까지 종사에 성심(誠心)·성의(誠意)로 봉무(奉務)하였다. 그는 영광읍(靈光邑) 고성리(古城里) 출신으로 삼화주택(三和住宅)을 설립하여 사업에 성공한 뒤에는 오직 위선사업(爲先事業) 과 사회사업(社會事業)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 한평생을 보냈다. 대소(大小) 종사에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할정도로 거금(巨金)을 아끼지 않고 쾌척(快擲)하며 숭조 돈종에 열성을 다하였다. 재경종친회장 재임 중에 있었던 양도공 산소·고양재의 대대적 보수(補修)도 그의 성금(誠金)에 의해 완수되었다.
 
해진(海鎭, 1938~1998, 사부공파)
3대 회장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봉무하였다. 그는 고창(高敞) 성송(星松) 출신으로 일찍이 사법고시(司法考試)에 합격하고, 서울지검(地檢) 검사(檢事)를 거쳐 서울변호사회 총무,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지냈으며, 공무(公務)로 바쁜 중에도 일찍부터 종사에 참여하여 문중(門中)에 많은 공헌(貢獻)을 하였다. 특히 법률가(法律家)로서 선산(先山) 문제 등 난마 (亂麻)처럼 얽힌 문중사 해결에 커다란 기여가 있었다.
 
동보(東保, 1933~ , 종파)
제4대 회장은 양도공 20대 종손 경당(敬堂) 공의 4남이다. 일찍부터 고양 선산(先山) 관리와 고양재 보수(補修) 등 종사에 힘을 기울였다. 1998년, 임기 중 작고한 해진 회장(會長)의 뒤를 이어 수석 부회장으로서 업무를 승계(承繼)하였다. 전임 회장 유고(有故) 직후부터 회장으로서의 실질적 업무를 수행해왔으나, 회규(會規)에 의해 정식(正式)으로 회장에 취임한 것은 2001년의 일이다. 취임 후 그는 문중의 원로(元老)·대표(代表)들과 함께 ‘고양재발전계획안’을 수립하였고, 문중 (門中)의 여론(輿論)에 따라 고양 선산(先山)의 일부를 정리하여 양도공회관을 마련하는 등 중책(重責)을 완수(完遂)하였 다. 또, 2003년에는 양도공 산소의 정비(整備)·대대적인 성역화(聖域化) 작업을 주도(主導)하였다.
 
동재(東宰, 1939~ , 종파)
제5대 회장은 강재(剛齋) 석연(石淵) 공의 아들이며, 양도공 20대 종손 경당의 조카이다. 그는 1972년 보사부 공무원 재직 시절, 고양 일산의 선산(先山)으로 통하는 길이 너무 협착해 통행이 불편한 것을 안타까이 여겨 경기도에 부탁, 예산을 편성해 도로(道路) 확장공사를 시행하도록 주선한 바 있다. 그 도로가 지금은 말끔히 포장되어 ‘양도공로(襄度公路)’ 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 때 이래, 종사에 참여하여 재경종친회 감사(監査)를 역임하였고, 2005년 7월 1일 재경종친회 회장에 취임하였다. 그로부터 12년 동안 종중발전과 융성을 위해 불철주야 헌신하였으며, 그 결과 실로 수많은 종사를 주도하여 성공리에 완성하였다. 그중 주요 위선사업은 다음과 같다.
- 일산 선산 매각대금 중 누락분 2억원 발견후 회수.
- 경당이공용연의 공적비, 기적비, 묘비 건립 및 경당유고 국역 간행.
- 선조 추모 뿌리찾기 글짓기대회 매년 1회 개최
- 양도공종중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
- 일산 선산아래 관리인 집터 372평 문중명의 등록(대법원 총무과장 이우연 종현 도움) - 양도공 묘역 앞 토지의 재판승소 및 형질변경후 주차장 사용과 세금 1억여원 절감.
- 대동보편찬위원장을 맡아 완풍대군파 양도공 대동보 편찬사업을 성공리에 완수(인물보감 및 인터넷 족보 포함) - 대동보 편찬사업 성공을 통해 마련한 잉여자금을 종중전체회의를 거쳐 고양재 보수, 종가 부조묘 보수, 담양 명산재 도로 보수, 종가 대나무숲 복구 등에 배정. 재경종친회장으로서는 고양재 보수를 맡아 진행.
- 흥경단 정화작업 진행. (완풍대군 정명시비 건립, 사적비 건립, 삼문 중건) - 뜻있는 종원들에게 권유하여 종중의 주요한 문헌, 유물을 조형물 및 석각비로 보존[이응도 양각비(현만, 재헌), 신도 비명 국역비(경진), 포총교지 국역비(영일), 태종의 포총교지비(동진), 세종의 교서비(영광청년회) 등] - 사맹공 효상 묘역 정화사업 및 영광 입향비와 비각 건립, 화수회관 건립.
- 사매당추모사업회 회장을 겸임하여 사매당 응종 행록 발간 및 추모비 건립, 위토 900평 추가 마련,
- 보타원 변정효 여사 효열비 건립.
- 양도공종중 유적지 책자 발간.
 
역대 총무이사
 
지금까지 양도공 산소와 고양재를 관리해온 데는 역대 재경종친회장의 노고(勞苦) 못지않게 그야말로 혈성(血誠)으로 헌신한 종현들이 적지 않았다. 많은 분들이 있지만, 우선 손꼽을 수 있는 분이 오래도록 총무이사(總務理事)를 역임 (歷任)하며 봉사해온 동건(東健) 종현과 홍신(弘信) 종현 두 분이다. 이분들은 실로 직접 발로 뛰며, 종사에 몸 바쳐 일한 분들이다. 고양 선산의 문중 환원(還元)을 위해 온갖 난관(難關)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분투하여 드디어는 그 결실 (結實)을 보았고, 군부대(軍部隊)와의 협상에 집요한 노력을 다하여 문중(門中)에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오는 등 이루 열거할 수 정도로 많은 기여가 있었던 두 분이다. 전 총무이사 양신(良信: 종파, 2005년 총무 피선) 씨 역시 70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수년 간 매일 출근(出勤) 근무함은 물론, 고양재를 위시한 경향(京鄕)의 선조(先祖) 유적지를 오가면서 수많은 일을 수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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