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완풍대군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9-02-11 조회수 : 3857
 
 
 

조선일보

[만물상] 형 제 (2001.09.26)


완풍대군은 이성계의 형으로, 왜군과 홍건적을 무찔러 정승 벼슬에 오른 고려말년의 공신이다. 그는 난처했다. 동생을 따르자니 그동안 충성을 다해온 고려조에 역적이 될 것이요, 고려 편에 서자니 이미 나라는 기울어 있었다. 『삼한고국에 내 몸 둘 곳 어디메뇨/지하에나 가서 형제들과 놀아나 볼까/같은 곳에서 법이 다르다 마오/바다에 떼 띄울 일 없어라』. 시 한 수를 남겨놓고 완풍대군은 음독자살로 생을 끝맺었다.


  우리 민족의 형제 간 우애는 유난했다. 공민왕 때 난지도 앞 한강을 나룻배로 건너던 형제가 있었다. 아우가 왜 그런지 안절부절못했다. 배에 타기 전 금덩어리 두 개를 주웠는데, 형에게 작은 것을 주고나서 자기 마음 속의 사악함을 자책하고 있던 것이었다. 고민 끝에 아우는 금덩이를 강물에 던지고 말았다. 얘기를 들은 형도 자기 몫의 금덩이를 던져버렸다. 난지도를 감싸고 흐르는 한강가 포구를 투금탄(投金灘) , 그 주변땅을 금을 물(浦)에 버렸다 하여 김포(金浦)라고 부르게 된 연유다.


형은 동생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동생은 그런 형을 어버이처럼 따르는 「효제」전통은 한국인의 핏속에 남아있는 남다른 덕목이다. 율곡이 쓴 「동거계사」 형제 대목은 이렇게 시작한다. 『동생 즉, 형제가 부모의 몸으로써 나누어 낳아 한몸이나 다르지 아니하니 서로 사랑하여 조금도 내 것, 남의 것 하는 마음 없으며 진실로 사랑하며 살지어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구족(九族)이 동거하였는데 하물며 우리는 부모님 일찍 여의었고…』.


그러나 그런 형제 간 우애도 현대로 오면서 많이 옅어지고, 혹 재산문제라도 얽힐라치면 서로 소송을 주고받는 원수지간이 돼버리는 형제도 드물지 않은 세상이 됐다. 국내 굴지의 한 재벌그룹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이른바 「형제의 난」 이후부터였다. 그뿐인가. 「형님」「동생」이 조직폭력배의 일상용어가 되면서「형제」의 본래 의미도 상당히 변질됐다.


  요즘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무슨 무슨「게이트」들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동생」들이 우르르 사건 전면에 등장한다. 「옷로비」때는 부인들이 말썽이더니, 이번엔 아우들 때문에 현직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출신 건교부장관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과연「형 만한 아우 없다」에 해당하는 경우가 될지, 아니면「난형난제(難兄難弟)」케이스가 될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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